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븐 바투타 (문단 편집) == 생애 == [[파일:이븐 바투타 여행.png]] >'''[[탕헤르]] → [[튀니스]] → [[알렉산드리아]] → [[카이로]] → [[예루살렘]] → [[다마스쿠스]] → [[메디나]] → [[메카]] → [[바스라]] → [[이스파한]] → [[쉬라즈]] → [[바그다드]] → [[타브리즈]] → [[모술]] → [[메카]] → [[제다]] → [[사나(예멘)|사나]] → [[아덴]] → [[모가디슈]] → [[몸바사]] → [[다르에스살람]] → [[무스카트]] → [[호르무즈 해협]] → [[바레인]] → [[메카]] → [[카이로]] → [[예루살렘]] → [[다마스쿠스]] → [[안탈리아]] → [[에르주룸]] → [[아조프]] → [[아스트라한]] → [[콘스탄티노플]] → [[부하라]] → [[사마르칸트]] → [[힌두쿠시 산맥|힌두쿠시]] → [[델리]] → [[캘리컷]] → [[몰디브]] → [[스리랑카]] → [[마두라이]] → [[몰디브]] → [[치타공]] → [[아삼]] → [[아체]] → [[자바섬|자바]] → [[베트남]] → [[취안저우시|취안저우]] → [[광저우]] → [[푸저우]] → [[항저우]] → [[베이징]] → [[말라카 해협]] → [[호르무즈 해협]] → [[바스라]] → [[다마스쿠스]] → [[가자]] → [[메카]] → [[카이로]] → [[탕헤르]] → [[지브롤터]] → [[그라나다]] → [[마라케시]] → [[말리]] → [[팀북투]] → [[가오(도시)|가오]] → [[탕헤르]]''' 1304년 모로코의 탕헤르의 법학자 집안으로 태어났다. 1325년 메카를 향해 [[순례]]를 떠났는데 순례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고 왕들의 사신과 대상을 겸하여 중동, 중앙아시아, 콘스탄티노플, 동아프리카, 남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중국을 거치는 장대한 여행을 했다. 24년만에 집으로 돌아와서 서아프리카 [[말리]] 지역을 여행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였다. 이 모든 여정을 여행기에 자세히 남겼으며 말년엔 모로코에 돌아와 법관으로 일하다 1368년 사망하였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singlebungle1472&no=744056|대략적인 일대기]] [[https://blog.naver.com/oneday2017/223076994887|#]]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이븐 바투타는 1332년에 콘스탄티노플을 방문, [[안드로니코스 3세|황제]]를 알현하였다. 당시 이븐 바투타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아나톨리아의 여러 도시를 거쳐 흑해를 건너 크림반도에 상륙, 이후 [[킵차크 칸국]]에 당도해 있었다. 이때 킵차크의 우즈베크 칸(Öz Beg khan)의 기독교인 아내였던 안드로니코스 3세의 딸 바얄룬 팔레올로기나( Bayalun Palaiologina)가 [[출산]]을 위해 고향을 방문하게 되자 우즈베크 칸의 명령으로 그녀를 수행하면서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게 된다.[* 다만 [[아야 소피아]] 내부는 황제에게 성당에 들어가보고 싶다고 요청했으나, 본인이 무슬림인 만큼 십자가에 예를 표할 수 없었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가 정말 중국을 오갔는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경우도 있으나[* 하지만 주류 역사학계는 [[마르코 폴로]] 역시 [[중국]]에 다녀온 것이 맞다고 보고 있다. 당시의 [[중국]] 제국인 [[원나라]] 측에서 마르코 폴로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야 수많은 외국인들을 정복해서 포로로 데리고 있던 세계제국이던 원제국에서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서 딱히 이름을 날릴 전공을 세웠거나 재주가 있던 인물은 아닌지라 그냥 일개 [[듣보잡]] [[색목인]]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일부 과장된 내용을 제외하면, [[원나라]] 당시에 행해졌던 여러가지 군사 문화 등, 직접 가보지 않으면 모르는 내용들이 [[동방견문록]]에 많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이븐 바투타는 워낙 그의 여행기라는 정확한 기록이 있어 그의 장대한 여행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중세 시대 아프리카부터 중국의 대원제국까지 직접 경험한 시대상과 문화, 정치, 종교, 사회에 대해 폭넓게 기록하고 있어 매우 소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데이비드 웨인즈(David Waines)의 "이븐 바투타의 오딧세이(The Odyssey of Ibn Battuta: Uncommon Tales of a Medieval Adventurer)"에 의하면 이 양반도 워낙 장기간 여행한터라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적는 이븐 주자이에게 기억이 헷갈려 엉뚱한 이야기를 말하기도 하고 --아무리 중세가 남의 글을 베껴쓰고 덧붙이고 2차 창작하는데 이골이 났다지만-- 자신 이전의 여행기를 참조하면서 베끼고 확장했다는 것을 알아낸 학자들과 정말 그가 중국에 갔는지 의심하는 학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읽어보면 정확한 내용도 많지만 중국의 닭이 타조만하다느니 같은 엉뚱한 이야기도 조금씩 나온다. 여행기 와중에 여자 이야기도 꽤 많이 쓰는 편이었다. 이를테면 어느 유럽 지방 여자가 예쁘더라 등등은 양반이었고, 자신이 [[몰디브]]에서 머무르는 동안 현지처가 4명에다가 여러 명의 여성 시종을 두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몰디브에서 먹는 생선이 정력에 좋아서, 매일같이 한번씩 현지처들을 찾아 밤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여기서 그는 몰디브 문화에 대한 부연설명을 하는데, 외지에서 몰디브로 선박이 들어오면 선상 사람들이 이곳 여성들과 결혼하는데, 떠나게 되면 곧 이혼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자신 역시 몰디브에서 여러명의 여성과 결혼하였다라는 이야기도 남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